깨달음의 길

번뇌가 보리이다

원칙과 양심 2016. 8. 10. 17:09

번뇌가 보리이다.

과연 번뇌가 보리일까?

처음 수행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생은 수많은 번뇌가 있는데

어떻게 번뇌를 없앨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겪는 수많은 생각들

마음이 일어나고 변하며 없어지는 순간들이

우리를 희노애락속에 가둔다.

 

일어나는 마음을 없을 수 있을까?

인간의 번뇌를 팔만사천으로 비유하여

번뇌의 망상을 극복하고자

팔만사천경이 나왔으니

 

수많은 인간들의 서로다른 생각으로

은인이되기도

원수가 되기도 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인지라

인연과연기로 이루어진 세상살이에

인연의 법을 모르면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다.

 

인연은 가까운자로부터 시작되기에

기쁨도 크고 슬픔도 크다.

 

변하지 않은 믿음으로 상대를 대하지만

변하는 상대에게 미움이 생기고

원망과 증오로 나의 영혼 얼룩진다.

 

나는 변하지 않은다고 하지만

나또한 세월이 지나면

변해있는 나를 보니

먼저 변한 가족과 이웃에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리오.

 

어차피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은 마음이 어디 있으며

변하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느냐

 

영원한 우정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맹세도

나의 마음도 변하니

변하는 우주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만물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남이 배반하여 가슴아파하지 말고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배반하는 것이니

처음에 일체유심조라

마음을 잘 씀이 기본이라.

 

나중에는 내마음도 변하는 헛것이니

때가 되면 마음도 버리니라.

 

나의 육신이 생노병사로 변하며

나의 마음이 생주이멸하니

나의 육신도

나의 영혼도 버려야 할것이니라.

이세상에는 나라는 실체가 없기때문이다.

 

이런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인식을 무변광대하게 하며

날마다 인식을 높여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한 곳이 천국이요 극락이다.

 

인식이 좁은 사람들이 모인곳이 지옥이다.

이런곳은 서로 물어뜯고 아귀다툼하는 곳이니

결국 나의 인식마저 온전히 버리는 것이 깨달음이다.

 

나는 언제 나의 모든 인식을 없애는 그런 날이 올것인가?

번뇌가 보리라는 것을 생활속에서 찾아본다.

 

살아가기 위한 과정속에 수많은 번뇌

이러한 번뇌를 풀기위해 고뇌하며 노력하다보면

고집멸도처럼

고통과 집착을 멸하여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인연법을 알고

우주의 법칙과 근본원리를 아니

살아가는 과정이 깨달음을 여는 과정이다.

 

지혜로운 자는 번뇌속에 지혜를 알고

생노병사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나니

이세상에서 관재재보살처럼 어디에든 메이지말고

응무소주이생기심으로 살게된다.

이 또한 보리가 아닌가?

 

진리의 정법으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수행이니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절대자로 거듭나는지라.

 

견성으로 진리의 세계를 보고

깨달음의 성불을 목표로 살으니

현실의 번뇌와 고통도 극락이요 보리니라.

 

언젠가 모두가

자타일시성불도가 되는

진리의 길을 알았기에,

세상의 요란한 삶속에서도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나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라.

 

번뇌가 보리요

세상이 열반이니라.

 

살아서 극락

죽어서 해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