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가득 부르고 싶은 나의 님

그리움 가득 채우고:사랑하는 동지와의 대화

원칙과 양심 2022. 6. 20. 09:31

엄마와 함께 

          정경순


하동 노량 사골 집에 와서
혼자 살고 계시는 팔십 이세의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직은 운전을 하셔서
하동시장에 가서
타향살이 30년의 내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팥 칼국수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하동의 손자 정동원 집에도 가고
밤이되고 아침이 되어
둘째 날에는 
엄마가 다니시는 남해 미조 치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실컷 보고 
남해 독일 마을에 들러 
1960년대에 독일 노동자로
남편은 광부로 부인은 간호원으로
독일 생활 3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남해가 준비해 준 
독일 마을에서 생활 하시며
독일 음식 가게를 하시는
분들을 뵈었습니다. 
그 가게에서 맛있는 소세지도 먹고 
옛날 독일 가셨던 역사 이야기도
들으며 떠나기 싫은 발걸음 돌아와
둘째 날을 지냈습니다 


하동군과 남해군을 잇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보이는
우리 마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섬진강
가까이에 있는 우리 마을 
양쪽의 문화를 만끽하는 우리 마을을 실감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셋째 날 , 넷째 날은 
엄마집 대청소
어깨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셨던
턱에 할 일이 많아
삼일째까지 대청소를 할 듯 합니다. 

우리집 앞바다 노량 바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정유재란때 작열이 일본군과
싸우시다 최후를 맞으신 
이순신 장군의 바다도
십초만에 달려 갈 수 있답니다   

어제는 잠시 
어릴 적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작은 어린이 꽃마을 유원지처럼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컸던 은행나무들이 
이젠 작아 보이고
쉬는 시간이면 총알같이 달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놀았던
우리의 우주 였던 운동장이 
조그마한 동그라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시절에 500명 가량 다녔는데 
요즘은 스물명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땐 산을 몇 개나 넘는 먼 거리에서도 걸어 다녔는데.  
요즘은 스쿨버스로 아이들을 모시러 간다고 합니다. 

50년전 열심히 심었던 사철나무
학교 담이 없어지고 
그 대신 바다 풍경이 보이게
낮은 철망 벽과 노란 꽃들을 심어
바람개비 장식도 꽂아 있었습니다. 

노란 꽃들 사이에 핀 빨간 접시꽃
친구 한옥이를 떠올렸습니다. 
부모님이 작은 배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다가 
어머니를 바다로 보내고
아버지만 혼자 돌아오신 
그 날의 친구의 피 눈물이 
한옥이네 마당 접시꽃과 
함께 내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노란 꽃 담벽에 서서 
한참이나 
미법 마을 학교 주변을 
바라보았습니다 
순미네 점숙이네 ~친구들 집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집이 이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오기전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작은 다리로 몇 시간을 걸어다녔던
길가의 풍경들도 열심히 둘러 보았습니다. 
오월의 초록빛 길옆의 언덕과
마을의 풍경이 얼마나 정겨운지.  

곧 일본으로 
가야하는 나에게 엄마는
고향을 이리 좋아라 하는 
네가 왜 먼 곳으로 시집을 갔냐며
안타까워 하신다. 

어젯 밤에는 
집 앞 바다에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고향 바다를 
가슴에 다 넣어 가려는 듯 
한참이나 야경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습니다. 

노량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 밤은 바다에 나가
이순신 장군과 대화를 하고
조선을 침략한 죄를 빌어야겠습니다. 

2022.5.25 

 

 

 

#그리운 동지에게 답글을 하다.

 

 

하동 노량 고향집.

가족의 사랑이 깃든 그곳에서 노후의 어머님과의 해후.

어머님의 정성과  손맛이 깃든 음식.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든 동심의 세계.

운동장을 돌아보니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건만
즐거웠던 친구들의 맑고 환한 웃음꽃이 
노량의 출렁이는 물결로 닥아오네요.

우국충정의 고향.
한일간의 구원의 관계를 회복하고,
동북아평화와 인류공영을 위한 하늘대한 충정의 깃발이 펄럭이네요.

대한의 딸.
대한의 꽃으로
조국의 품에서
건강하게 행복한 추억 가득하소서.

붓가는대로,
정회장님을 생각하며,

2022년 5월 26일 아침,
김재석드림.